봄에 사놓고 한쪽에 뭉쳐뒀던 책부터 얼마전 산 책까지 더이상 미룰 수 없다 싶어 정리했다.

  • 개발 서적이 한 줄
  • 대중 과학서와 소설이 한 줄
  • 글쓰기와 말하기와 심리에 관한, 그러니까 커뮤니케이션과 기타 대중 전문서가 한 줄
  • 한국 정치와 세계 경제에 대한 책과 개인주의자를 위한 책이 한 줄
  • 만화와 일러스트가 한 줄.

음… 내가 막연히 느끼던 불안의 정체가 조금은 보이는 기분이다. 전자책으로는 이런 건 실감하기 어렵겠다 싶다. 여전히 디지털은 이길 수 없는 그런 부분.

고화질 경량 VR/AR이 보급된다면 그 때도 책장을 보며 이렇게 생각할까? 책장에 책을 꽂아 넣는 게 아니라, 눈에 보이는 아무런 표시도 없는 판자 하나를 끼워놓고 보유한 전자책에 맞춰 전자가 아닌 분자로 만들어진 무언가가 있는 것 처럼 겹쳐 보여준다면. 그리고 사람의 신경계는 잡아낼 수 없는 짧은 시간에 정보를 겹쳐준다면. 그렇다면 사람에겐 전자책인가 분자책인가는 무의미 할텐데.

그때의 책은 무게감과 촉각과 시각의 UX를 가진 정보 전달용 공산품이 아닌, 기능적으로는 아무래도 좋은 수집품의 영역에 존재하는 무언가가 될 것 같다. 컵이나 그릇이나 인형 같은. 규격 같은 건 쓸모 없어지고 저자도 중요하지만 크기와 종이를 고르고 표지 그림을 선택하는 편집자의 존재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해질 것 같다. 지금도 자신의 책장을 내용이 아닌 시각적 기준으로 정리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으니까.